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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정치, 정치를 바꾸는 시민

                           노동사목부 한유리 

우리의 마음을 모아 시작 기도로 시작하였습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음에도 빠짐없이 오신 수강생 분들이 대단 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성당을 따뜻하게 해 놓고 기다리신 원당동 사무장님께 감사하더라구요.

유범상 강사님은 퀴즈로 시작하셨습니다. ‘정치와 무관한 것이 세상에 있을까?’ 문제를 맞추고 정답을 찾는 행위에 익숙한 우리 수강생들은 예시를 뚫어져라 보았지만 알쏭달쏭했습니다. 물론 답은 세상에 정치와 무관한 것은 없다.’였습니다. 현재 우리는 생각하고 말하는 호모폴리티쿠스(정치하는 인간)가 아니라 호모 이코노미스(이익, 경제활동을 하는 인간)로만 강요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중세까지는 생각과 말은 하느님만 하시고 그것을 대변하는 성직자가 제1신분이었고 근대로 넘어오면서 모든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고 정치하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치 정권 히틀러도 그렇고 우리 박정희 시대 때도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나 그 국민의 말과 생각을 규정하는 권력(강사님은 달을 가리키는 달달놈이라고 하셨습니다.)을 보았을 때 과연 누가, 어떻게 정치해야하는가?’우리는 누구나 성실하고 시키는대로 일만했는데 우리가 창출한 권력이 사람을 죽이고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었으면? 그리고 시키는 대로만 하게끔 훈련받아 생각하고 말하는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묵인하는 것도, 반대하는 것도, 찬성하는 것도 그 모든 것이 저어치적 행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핵심 질문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하는데 어떤 국민이 되어야 하나?’

순응만 하고 비판이 없는 시민으로만 교육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순응은 우파, 비판은 좌파라고 색깔론이 입혀집니다. 생각하지 못하고 생각 되어집니다. 순응은 제도와 틀에 맞춰지는 것이고 비판은 돌아보고 기존의 생각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것으로 우리에게는 순응에서 벗어날 수 있고 순응의 틀이 넓은 체제에서도 그 틀을 넓힐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상상력을 가져야 합니다. 통에 순응하기만 하면 달라지지가 않습니다. 통을 넓히든 통을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정치입니다. 비판하고 상상할 수 있는 생각하고 말하는 시민 되기!

선성장 후분배, 선별적 복지로 통을 제한하는 것은 호모이코노미스를 권장하는 모습입니다. 통을 넓히고 스스로 비판하는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필요한 재정을 물으면 부자들에게 걷으면 됩니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논리는 베버리지 보고서의 가난, 질병, 불결, 무지, 무위(실업)을 개인이 해결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함께, 국민이 함께 책임지고 해결하기 위해서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고 그것으로 취약계층도 살리고 부자도 손해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어려서부터 교육으로 체화되어 학력 차별도 없고 직업의 귀천도 없습니다.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위해서는 재정의 문제만 볼 것이 아니라 그러한 시민을 교육하고 활동할 수 있어야 하는데 큰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는 촛불입니다. 작은 사건들이 있어야 하고 그 사건 이전에 더 많은 징후들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작은 공동체부터 대상화되지 말고 생각하고 말하는 학습 동아리 활동 정치 써클 활동을 하여 이야기들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들어 노인 복지관에 청소년들이 봉사오는데 어느 어르신이 더 이상 우리를 돌보지 말고 지역사회를 돌보자고 하여 함께 쓰레기를 줍고 화단을 가꾸는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어르신들이 바리스타 자격을 취득하고 대학 앞에서 힘내라 청년들이란 선전물을 붙이고 차를 나눠주고 소통하며 의회에 모니터단으로 활동하여 목소리를 전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수천의 징후가 되고 사건으로 모아지고 결정적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하는 시민,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질문시간에는 강사님 나이를 물어보셨는데, 이 부분에서 늙은이, 젊은이를 생각과 몸으로 함께 표현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본인은 젊은 젊은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국 정치의 이데올로기적 한계인 자유주의 일색에서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는 비판의 소중함을 한 번 더 이야기 하시고 제도만 탓해서는 안 되고 시민사회가 달라지지 않으면 마찬가지 이니 우리의 역할을 강조하셨고 성당에서도 사제와 평신도의 역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의견이 추가로 제시되었고 이 부분은 다음 평신도 역할강의와 수료 미사 때 추가로 이야기 하기로 하고 강의를 마쳤습니다.

긴 강의에도 호응이 좋았으며 마침 기도를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며 마무리 하였습니다.

 

14기 사회교리 학교 4강 경제생활

                                        노동사목부 구지현 엘리사벳

사회교리가 벌써 반을 지나 네 번째 강의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강의가 2번 남았다고 하니 아쉬우면서도 후련한 마음으로 원당동 성당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네 번째 강의의 주제는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였습니다. 오준호 작가님께서는 강의를 탈출기의 만나를 예를 들어 시작하셨습니다. ‘만나의 예로 우리 교회에서는 과연 기본소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기본소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강의 중 가장 절실하게 느껴진 것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마다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많습니다. 친구들 대부분이 사회초년생이 많습니다. 모이면 하는 이야기가 너무 힘들고 괴롭지만 3년은 버티자는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또한 새로운 것을 하고자 한다 말한다면 괜한 시도 하지 말고 하던 거나 잘하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우리는 왜 3년을 버텨야 하고 새로운 것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만두고 새로운 것을 한다면 우리는 ‘0’으로 돌아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우리는 ‘0’으로 돌아간다 해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청년, 청소년들이 살아갈 이 사회는 취업이나 미래에 대해 불안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교리 3강 노동과 소유권

 

                          정의평화위원회 정정민 오틸리아

 

사회교리학교 세 번째 강의 노동과 소유권강의 후기 전합니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지만 사회교리를 배우고자 수강생들이 늦은 시간에 발걸음을 재촉하며 원당동 성당에 모였습니다.

3강 강의를 맡아 주신 심현주 선생님은 타 교구에서도 사회교리 강의를 맡고 계신 전문강사님이셨습니다. 짧은 시간이라 노동과 소유 두가지 주제를 다루기에 쉽지 않다고 말씀하셨지만 노동과 소유에 대한 사회역사적 의미와 교회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노동 하면 힘겨운 일, 먹고 살기 위해서 힘들지만 해야하는 일, 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멈출수 없는 일 이정도로 생각하게 되는데요, 구약에서는 하느님의 벌이었던 노동이 산업혁명시대에 노동자의 권리로 가톨릭 교회가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 인상깊었습니다.

지난 2강에 이어 교회가 사회의 변화 과정속에서 함께 변화하며 복음을 선포하려고한 모습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강사님께서는 노동자의 권리를 사유재산권, 노동과정참여권, 단결권, 여가권,파업권 이렇게 설명해 주셨는데요 저는 특히 노동자의 권리인 단결권, 파업권 역시 교회에서 노동자의 권리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이번 강의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시대가 오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게 된다고 하는데 노동을 지금과 같이 하지 않아도 생존이 보장된다면 노동은 어떤의미를 같게 될 지를 생각하며 사회적 노동에 대해 제안하신 부분도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강의 후 수강생들과 나눔시간에 강의 내용에서 기억에 남는 것을 이야기 하며 강의 내용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에 대한 개념이 아직은 나에게 어렵다. 아직은 내 것을 포기하기 보다는 더 많이 가지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노동자의 권리중 참여권을 들었는데 정말 참여하는 노동자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대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안타깝다.”등등의 의견 나눔이 있었습니다.

한주 한주 강의 내용이 쌓여 가면서 가톨릭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조금씩 알게되는 것 같습니다. 강의해주신 심현주 강사님과 함께 하시는 수강생들께 감사드립니다.

 

사회교리의 역사

             – 노동사목부 김혜숙 비비안나

2강 강의를 해주신 박유미 강사님

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 시간!!

유난히도 바빠서 체력이 바닥을 치고 있는 한 주....

강의를 빠질까?’ ‘그래도 가야지라는 고민과 갈등을 거듭하다가 원당동 성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밀려오는 피로감에 처음에는 강의에 잘 집중하지 못하였으나 사회교리의 근원과 역대 교황들의 사회회칙과 사목서한, 권고라는 새로운 내용에 조금씩 조금씩 강의에 집중할 수가 있었다.

이번 강의를 통해서 큰 역사적 사건 때마다 교회는 그 자리에 함께하였고, 또한 그때마다 교황님들은 사회회칙을 선포하며 개입하고 실천하고 행동하며 사회와 함께하며 변해 왔다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또한 너희는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이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고민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 교회 안에서 기도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으로 나가 다시 말해 사회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정치, 사회, 문화, 경제등 전반적인 것, 생각하고, 고민하고, 함께하고,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이며 그것이 주님의 가르침이며 교회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이 사회 안에 그리스도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자리에 머무르고 계실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역사적으로 그래왔던 것처럼 항상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함을 상기시키는 시간이었다.

“너희가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두근두근 14기 사회교리 학교 1강 사회교리원리

- 양성일 신부(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사회교리 학교 1강이 시작되기 전까지 과연 몇분이나 오실까 하는 걱정이 마음을 했을 때 한분 두분 오시는 신자분들을 보며 그래도 시작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의가 시작되고 강의를 해주신 이주형 신부님의 말씀처럼 신학교 교과 수업으로 들은 이후에 사회교리 강의를 처음듣는 사회교리를 모르는 전담 신부가 되어 버린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며 강의를 들었습니다. 굉장히 많은 내용을 준비해오셨지만 시간의 제약으로 인하여 건너뛴 내용들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렇지만 강의를 들은후에 나눔의 시간에는 수강생분들의 관심과 열심함을 느낄 수 있는 때였습니다. 사회적 현상이나 사회교리에 깊은 관심이 있으신분도 계셨고, 개인적 소견을 진지하게 나누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과연 잘 될까?’ 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던 찾아가는 사회교리 학교는 이렇게 시작이 되었고, 이 판단이 나쁘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사회교리는 실천 교리입니다. 어떻게 실천을 준비해야 하고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함께 나누는 사회교리 학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1강 사회교리입문을 강의하시는 이주형 신부님(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이병찬 원당동 주임 신부님 인사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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