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 토요일 아침, 세월호 참사 8주기를 맞아 정의평화위원회는 사순피정을 준비했습니다. 피정은 인천교구 노동자센터 3층 강당에서, 노동사목부 박은영 수녀님께서 진행을 해주셨습니다. 묵상에 들어가기전, 간단한 몸풀기를 하고 침묵기도로 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바쁘게 정신없이 생활하다가 잠시나마 자신안의 고요와 주변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수녀님께서 들려주신 성서말씀에 귀기울이며 나에게 다가오는 것들에 더 깊이 다가가 보았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오 11, 28~30 -
피정 중 참가자들은 단원고 학생들의 평전을 읽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단원고 기억의 교실을 방문했을때 학생 한명에게 작은 메모를 남기고자 각자 자신이 선택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별이된 고인에게 다가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점심 식사후 안산으로 출발하여 416 민주시민교육원에 도착, 416 기억의 교실이 있는 별관으로 향했습니다. 별관에서는 세월호 유가족이신 어머님들이 반갑게 맞아 주셨고, 단원고 2학년 4반 임경빈 학생의 어머니 전인숙님께서 안내해 주셨습니다.
학생들이 사용했던 책상과 의자 사물함등이 그대로 복원되어 있는 교실 중 2학년 2반을 찾았습니다. 저희가 방문한 당일이 생일인 온유학생은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심리상담사가 되고 싶은 학생이었다고 해요. 경빈 어머니 설명후 각자 각 반을 둘러 보았고 오전에 준비한 대로 평전에서 만난 학생을 찾아 책상위에 놓인 노트에 편지를 남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기억의 교실 순례를 마치고 단원고등학교로 향했습니다. 단원고 교정 오른쪽 언덕에 '노란 고래의 꿈' 추모조형물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단원고 희생자들을 등에 태우고 수면위로 올라가는 것을 형상화한 모습이었습니다. 학교 교정이 내려다보는 자리에서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416 기억 전시관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기억 전시관에는 416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고, 전시관 천장에는 희생자들의 기념물 보관함이 걸려 있었습니다. 전시관 작품 관람후 참여자들을 전시관에서 양성일신부(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님의 주례로 파견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미사 강론시간에 참여자들의 하루 소감을 나눈는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너무 미안하고, 너무 두려워서 단원고 교실을 찾기 힘들고 어려웠지만 이렇게 와서 직면하니 조금 두려움이 내려갔다. 이제 조금씩 더 용기를 내야 겠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잊지 않겠다. 안산 단원고 간다고 하니 왜 그런곳에 가느냐는 질책받았다. 그런 분들께 더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여전히 미안하고 힘들지만 점차 나아질 수 있을 것 같다. 유가족 분들이 온전히 희생자들을 추도할 수 있도록 진실을 밝히도록 관심갖고 노력하겠다. "
전국민이 트라우마를 겪은 사건인 만큼 저희 참여자들 각자에게도 세월호의 상처가 오롯이 남아 있었지만 이제 마주하고 조금씩 더 접하겠다는 마음으로 사순 피정과 416 안산순례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세월호 8주기 추모 행동은 추모미사(4/6) 팽목항과 세월호 선체방문(6/20-21 예정)등으로 이어집니다. 관심있는분들의 참여 기다립니다.(765-6970)
성 김대건 세미나를 안전하고 의미있게 개최할 수 있었던 세미나의 외전, 즉 숨은 주인공들의 이야기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아무리 감사해도 지나치지 않은 분이 계신데요,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시기임에도 정의평화위원회의 세미나 제안을 수락해 주신 옥련동 성당 주임 이경환 신부님이십니다. 2021년 새로 부임하신데다, 미사 중단 등으로 쉽지 않은 조건이었지만 흔쾌히 세미나 공동주최를 결정해 주셨습니다.(세미나 제안 수락후 약간의 심적 고통이 계셨다는 소식은 한 참 후에 들려왔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 다시 전달드립니다.)
“늘 우리나라 첫 번째 사제라는 빛으로 다가왔던 저에게 이번 세미나 준비는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한국 천주교회에 이렇게나 많은 빚을 남겨준 분이신 줄 새롭게 알게 해주었습니다.”
인사의 말씀도 정말 멋지게 해 주신 이경환 신부님은 본당 신자들과 세미나 준비를 위해 독서토론, 성지순례, 강의 동영상 시청 등을 세세히 본당에 안내해 주셨습니다. 신부님의 열정과 지지로 코로나 19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방역 기주을 철저히 준수하며 옥련동 신자들도 세미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셨습니다. 본당에서는 슬기로운 신앙 생활 방법을 이렇게 안내하고 참가할 신자들의 신청을 받았답니다.
이렇게 신자들께 세미나 준비를 위한 안내 홍보를 준비한 뒤 옥련동 성당 이준성 보좌 신부님과 청년들이 "청년 김대건길" 을 걷고 신자들께 홍보 영상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8월말의 더위를 무릅쓰고 청년들이 먼저 세미나 준비에 첫 발을떼어 주셨습니다. ( 청년 김대건길 홍보 동영상 https://youtu.be/poasOKEr1gs )
두 신부님의 응원에 힘입어 옥련동 성당 신자들도 이번 세미나 준비를 위해 감동적인 호응을 해 주셨답니다. ‘김대건 바로알기’ 책을 읽고 독서 토론 모임을 진행한 독서 토론은 모두 15팀 46명의 신자가 함께 하였고 각 팀은 모두 3번에 나누어 독서토론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매번 독서 토론마다 준비된 진행지에 따라 ‘김대건 신부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점’ ‘신앙 후손들을 위해 알려주고 할수 있는 실천’ ‘김대건 신부님 옥중 서한에 대한 답장쓰기’ 등을 나누었고 토론 결과물을 제출하였습니다. 각 팀마다 나눈 내용을 정성껏 기록해 주셨고, 김대건 신부님께 쓰는 편지에는 신부님의 삶에 대한 감동과 후대 신자로서의 각오가 담겨있어 결과지를 읽는 것만으로도 신앙의 충만해지는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고 묵상으로 참여한 신자도 14명이었습니다. 독서 모임으로 시간을 내기 어려운 신자들을 위하여 김대건 신부님을 알아갈 수 있는 유튜브 영상을 소개하였고 순교자 성월 주일 미사에는 영상을 시청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또한 옥련동 본당은 코로나19로 전신자 성지 순례를 하지 못하는 조건에서 4인 이하 그룹별 성지순례 참가단에게 소정의 지원을 하여 성지순례를 후원하였습니다. 총 27팀이 성지 순례를 신청하여 김대건 신부님의 성지들을 방문하고 소감문을 제출하였습니다. 은이성지, 미리내성지, 골배마실, 솔뫼성지, 새남터, 나바위 성지등을 방문한 각 팀은 김대건 신부님의 삶과 신앙을 느끼고 소중한 시간이었고 김대건 신부님의 삶을 자세히 알고, 성지를 방문하니 더 많은 것이 보이고 느껴졌다고 고백해 주셨습니다.
독서토론과 성지순례 결과 보고서에는 신자들께서 마음을 절절히 기록해 주셔서 보고서를 읽는 것만으로도 감동입니다. 옥련동 성당에서는 소감문에 대한 시상을 하신다고 해요. 너무나 열심히 참여하셔서 우수작을 뽑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체 세미나를 매끄럽게 이끌어주신 사회자들의 역할에 정말 감동했습니다. 전문 사회자 못지 않은 진행으로 봉사해 주셔서 세미나가 무리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장장 6개월을 준비하고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 전합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삶과 신앙을 이어 받아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찾는 우리가 되는데 함께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2021년 11월 5일 옥련동 성당에서는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자리가 열렸습니다. 바로,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옥련동 성당이 공동주최로 "김대건 신부의 삶과 신앙"을 주제로 세미나가 개최되었습니다.
기조 발제를 준비해 주신 강석진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개갑성지담당)께서는 발제 서두에 이번 행사에 대한 의의를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세미나를 하는 이 자리는 앞으로 10년, 20년후 교회사적으로 역사가 될 것입니다. 성인들의 삶을 교구 차원, 성지 차원에서 연구 발표 했었지만 본당 차원에서 발표한 것은 처음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님은 김대건 서한을 분석하여 기도, 만남, 순명, 헌신, 평화, 순교의 주제로 김대건 신부님의 삶과 신앙을 접근하여 발표해 주셨습니다. 신학생 시절뿐 아니라 부제와 사제의 길을 가는 동안 하느님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만큼 장상과 스승, 그리고 조선 신자들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였던 김대건 신부님의 사랑의 삶을 여섯 개의 시선으로 정리해 주셨습니다.
특히 김대건 신부님의 평화의 시선에 대해 발제하시며 정의평화의 내용에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을 강조해 주셨습니다.
“19세기 중엽의 서세동점과 아편 전쟁등으로 혼란스러운 동아시아의 상황을 신앙인의 눈으로 파악하였던 김대건 신부는 종교의 자유를 갈망하는 신자들의 염원을 풀기 위해 해결방안을 모색하였습니다. 프랑스와 무력 충돌이 가져올 고통을 예견하고, 조선 정부와 파리외방전교회와의 상충적인 입장을 외교의 차원에서 평화롭게 풀어나가려고 한 김대건 신부님의 ‘이해와 평화’의 시선에 주목해야 한다”
기조 발제를 들은 후 전체 참여자들은 각 주제별 장소로 이동하여 소주제 발표를 듣고 질의와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소주제 1 발표는 김규성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께서 ‘1830년대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가 본 조선 신자들의 신앙 생활’을 발제해 주셨습니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박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앙을 지켜나가는 조선 신자들의 모습에 대해 높이 평가하며 조선 선교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았고 오랫동안 성직자 없이 신앙 생활을 한 조선 신자들의 미숙한 점은 보완되어야 하며 조선인 사제 양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고 발제해 주셨습니다.
발제후 이어진 질의와 토론에서는 당시 신자들이 교리교육과 신심단체활동, 대축일미사 독서등을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산속에서 공동체로 흩어져 있던 교우들이 어떻게 소통했는지, 신학생 선발의 기준은 무엇이었는지 등 초기 교회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대해 이해하기 위한 관심을 보였고, 박해와 순교가 없는 지금의 우리 신자들은 어떻게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의와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소주제 2 발표는 윤대기 변호사(인천광역시 인권위원장)께서 ‘혐오와 차별을 넘어 평등박애로-시대정신’을 발제해 주셨습니다. 혐오의 역사와 차별의 역사를 해설하며 혐오는 얕은 지식과 편협한 공감으로 시작되며 우리는 누구나 혐오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이해하고 피해자들에게먼저 손 내밀고 목소리를 내주는 실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이어진 토론에서는 변희수 하사등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혐오에 대해, 교회가 혐오와 차별을 방관하지 않는 방법등에 대해 질의와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소주제 3 발표는 양성일 신부(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께서 ‘세상과 대화하는 교회와 신앙인’의 주제를 코로나19특별위원회 활동을 중심으로 발제해 주셨습니다. 코로나19로 친교와 성찬례의 공백을 갖게 된 교회공동체의 경험을 돌아보고 인천교구 코로나19대응 특별위원회의 활동으로 이웃에 대한 섬김과 선포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발제해주셨습니다. 의료인, 소상공인, 실직 노동자들에 대한 물질적 지원과 부모, 청년, 중장년의 심리지원 활동을 통해 팬데믹 시대 신앙의 표현을 모색하였습니다.
발제후 나눔에서는 팬데믹과 세미나 준비 등의 시간을 보낸 체험을 나눠 주셨습니다.
“코로나로 신앙생활은 어려웠지만 성체성사의 귀중함을 더 느낄 수 있었고 의무감이나 취사선택해서 나누던 모습에서 내가 조금더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진정으로 생겨났고 정기적으로 나누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특히 김대건 신부님의 삶을 묵상하며 평등의 가치가 깊이 남았고 절두산 성지를 순례하면서 그 이전의 성지순례와는 다르게 성인의 삶을 묵상할수 있었습니다. ”
인천도시산업선교회는 인천 민주화항쟁의 상징인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도시 재개발로 인해 철거될 위기체 처해 있어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존치를 위한 대책을 함께 모색하고 있습니다. 7월 19일 박남춘 시장 명의로 '강행'을 고시하여 범시민대책위는 긴급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아래 긴급 성명서 올립니다. 관심과 기도 요청드립니다.
긴급성명서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의 가치보다 재개발 가치를 우선해 재개발 고시한 인천시와 박남춘 시장에 분노한다!
- 인천시는 ‘중재’ 운운할 게 아니라 통렬한 반성부터 먼저 해야 한다!
- 재개발사업의 이해당사자인 조택상 부시장은 책임을 통감하고 사퇴하라!
- 인천의 노동산업유산 철거를 사실상 용인한 박남춘 시장이 직접 나서 해결하라!
- 박남춘 시장은 지금이라도 고시를 철회하라! 그렇지 않으면 反박남춘 정치운동에 적극 나설 것이다!
인천광역시는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있다. 인천시의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철거 행정 폭거는 부동산개발이 압도하고 있는 현 한국사회의 축도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공간이자 인천 노동운동의 역사를 온존하고 있는 인천도시산업선교회(현 미문의 일꾼교회)를 철거해 재개발을 추진하도록 한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의 결정은 재개발행정이 인천시의 최우선 시책일 뿐만 아니라 최우선 가치임을 스스로 보여준 서글픈 사태이다.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의 4대총무이자 70대 원로목사이신 김정택 목사님의 단식 28일째인 7월19일에 박남춘 인천시장 명의로 기습 고시된 ‘화수화평재개발 정비계획 및 정비구역 지정 결정(변경)과 지형도면 고시’는 여전히 이런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박남춘 시정부의 반민주적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노동, 민주, 산업유산을 보존 관리해야 할 책무가 있는 인천시가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존치를 위한 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범시민대책위)>와 조합간의 대립을 부각시키며 중재에 나서겠다는 둥, 상생의 지혜를 모야야 한다는 둥 엉뚱한 논조를 펴더니 범시민대책위의 뒤통수를 때리듯 고시한 것은 ‘시민의 시장’을 강조하고 노무현 정신, 촛불정신을 계승하겠다고 했던 박남춘 시장의 말들이 모두 거짓이었음을 백일하에 드러내고 있다.
이번 고시와 보도자료를 주도한 조택상 정무부시장은 바로 인천산선 철거를 전제로 한 화수화평재개발사업을 승인한 인천시도시계획위원회의 위원장이다. 그는 동구 구청장을 역임했을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을 지역구로 둔 민주당 지역위원장이었다. 추후 선거구가 어찌될 지 알 수 없고, 국회의원으로 어느 지역에 출마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조택상 부시장은 해당 안건에 대한 이해당사자이다. 여러 도시계획위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지난 5월 26일 인천시 도시계획위에서 '화수화평 재개발사업 정비계획 및 정비구역 지정 결정 변경안'에 대해 여러 도시계획위원들이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의 존치 의견을 개진했다고 한다. 그러나 위원장인 조택상 부시장이 현장을 가보았느냐고 하면서 재개발 필요성을 주장해 분과위원회를 구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천시는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는 지난 5월 정비계획 변경 안에 대해 교회 측의 주장을 신중히 검토하고자 보류 결정을 내리고, 6월 분과위원회를 구성해 현장 조사 등을 거친 후 6월 23일 다시 위원회를 개최했다.”고 했는데 거짓말이다. 교회 측의 주장을 신중히 검토하려면 마땅히 교회 측의 관계자를 찾아와 만나야 했던 것 아닌가? 분과위원회는 지속적으로 존치의견을 개진한 인천도시산업선교회측은 방문하지도 않은 채, 빈집들이 있는 일부 지역만 보고 6월 23일 회의에서 인천산선을 철거해도 좋다는 결정을 내려버렸다. 이런 결정을 주도한 조택상 부시장이 인천산선의 존치요구에 대해 중재를 운운할 자격이 있는가?
인천시의 보도자료는 또한 주민들의 입을 빌려 “주민들은 교회의 역사적 가치 보전을 위해 존치를 요구하는 것은 충분히 인정하고 있으나, 교회는 문화재나 인천시 건축자산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건축물로서 존치 이외에 다른 대안을 강구해 역사적 가치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라고 언급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왔는데도 인천시는 여전히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의 의 가치를 인정치 않고 이를 문화재나 인천시 건축자산으로 만들지 않은 자신의 책무조차 망각하고 있다.
우리 범시민대책위원회는 이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박남춘 시장은 이제라도 고시를 즉각 철회하라. 지난 주 3자 협의 후 이번 주에도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 있었으며, 시 관계자는 범대위 측에 고시 연기를 약속한 바가 있었다. 이는 이러한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신의를 저버리는 배신행위다.
둘째 이번 사태의 책임자이자 이해관계자인 조택상 부시장의 사과와 사퇴를 요구한다. 인천시도시계획위원회의 결정을 자신의 의도대로 끌고 가 사실상 도시계획위원회를 허수아비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인천과 대한민국을 대표할 산업 민주화 노동 유산의 가치를 무시하고 소수 주택소유자들과 재벌 건설사의 이익을 앞세우는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셋째, 인천도시계획위원회의 조건부 제안을 공식적으로 거부한다. 인천시의 보도자료와 고시는 지난 주 조합 측에서 제안한 존치 설계 제안을 합리적으로 수용하려던 범시민대책위의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넷째, 인천시가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인천도시산업선교회 건물을 조속히 건물 등기하고 인천시 건축자산으로 포함시킬 뿐만 아니라 등록문화재로 선정해 존치해줄 것을 요구한다.
다섯째, 이를 위해 범시민대책위 상임대표단과 박남춘 인천광역시장과의 공식 면담을 요구한다. 노무현 정신을 강조하며 촛불정신 계승을 내세우고 시민의 시장을 강조하는 박남춘 시장은 밑으로 결정과 책임을 미루지 말고 조속히 결자해지해야 할 것이다!
4월 21일 부모를 대상으로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온라인 강의로 진행하였는데요 지난 3월 17일에 이어 부모 심리지원 두번째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대철(든든 협동조합 이야기 심리 상담소) 강사님을 모시고 진행한 이번 교육에는 멀리 인도에 에서 생활하고 계신 신자분들도 참석하셔서 더욱 반갑고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교육에서 강사님은 사진과 그림들을 보여 주시며 우리들의 관계는 안녕한지를 돌아보며 생각을 떠올려 보도록 안내를 해주셨고요 짧은 진단 테스트를 통해 참여한 부모들이 자신의 유형을 찾아 보게 하시고 다른 유형의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표현 해 보라고 권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다음 그림중 어떤 유형이실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온라인을 통한 짧은 진단이었지만 참여자들은 진지하게 자신의 유형을 탐색하여 공작형, 강아지형, 올빼미형, 호랑이형중에서 찾아보고 다른 유형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며 자녀와 남편등 가족들의 유형과 관계를 떠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다음으로 나전달법 대화방법과 대화예시로 부모 자녀간 소통의 방법을 생각해 보고 마지막으로 작은 변화 1가지를 실천하면 주변의 많은 것들이 달라 지게 한다는 영상을 보며 강의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참여하신 부모님들은 "나는 공작이지만 가정에서 아이들에게는 호랑이로 대했던 것 같다" "솔직히 나의 유형을 찾기 어려웠다. 4가지 모두가 골고루 섞여 있었다. 아이들을 대할 때도 일관성 없었던 모습이 반성된다." "나는 나의 유형 찾기할때 모든 문항에 파랑만 나왔다. 나의 한쪽으로 치우친 모습에 아이나 주변 사람들이 힘들었던 것 같다""아이와 대화 할 때 좀 더 열린 대화를 해야 겠다."며 각자의 경험과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아쉽게도 참여하지 못하셨던 분들은 유튜브 채널 인천교구 노동사목부에서 교육영상을 일부 시청하실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세번째 부모 심리지원 프로그램은 다음달 5월 25일(화) 19시 온라인으로 진행되니 아깝게 1,2차 교육에 참여 못하신 분들 모두 관심 가져 주셔요~
5월 부모심리지원 프로그램은 "성격유형으로 알아 보는 자녀양육법"이라는 주제로 에니어그램 전문강사를 모시고 진행알 예정입니다.
사순시기 인천교구 코로나19 특별위원회는착한 사마리아인 실천 활동을 영상으로 제작하여 홍보합니다.
많은 신자들과 단체, 수도회등의 후원으로 마련된 기금으로 부활을 맞아 인천공항 실직 노동자들에게 쌀과 휴지를 전달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착한 사마리아인 실천을 본당 자체로 진행한 상3동 본당(주임 박요환신부)과 연계하여 청년 실직자,구직자들에게 생필품 꾸러미를 전달하였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코로나시기 보내는 모든 분들이 서로 격려하며 힘내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립니다.
코로나19대응 특별위원회는 3월 11일 민주노총 인천본부와 '인천공항 노동자 간담회'를 진행하였습니다. 간담회에서 노동사목부 국장 양성일신부는 천주교 인천교구 코로나19대응 특별위원회 활동을 취지와 그간의 활동을 소개하였고, 이어서 민주노총 인천본부 이상욱 조직국장이 코로나19 이후 인천공항 노동자들의 무급휴직 현황 실태를 설명하였습니다.
이날 간담회에는 인천공항 카트 관리업무 노동자와 아시아나항공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을 당사자들로부터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노동자의 현장이야기로 인천국제공항의 노동실태에 대해 조금 더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2020년 5월 이후 무급 휴직으로 버텨온 노동자들과 무급휴직의 장기화로 직장을 떠난 노동자들, 그리고 2021년 대량해고가 예고되어 있어 인천국제공항 노동자들을 위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함을 느끼게 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천주교 인천교구 코로나19 대응 특별위원회(위원장 이용권 총대리 신부)는 12월 18일 농어촌지역(강화,영흥) 11개 지역아동센터에 아동선물비와 종사자 응원 선물을 전달하는 “성탄절 싼타 선물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코로나19 특별위원회는 '성탄절 싼타되기' 후원을 조직하여 개인과 기관, 기업으로부터 후원금을 모급하여 농어촌지역 지역아동센터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특별위원회로부터 선물비를 지원 받은 각 지역아동센터는 아동들의 욕구와 상황에 맞게 성탄 선물을 구입하여 아동들에게 전달할 예정입니다.
코로나19 대응 특별위원회는 코로나 시기 아동 돌봄 종사자들에게도 ‘필수돌봄노동현장에서 당신이 백신입니다. 코로나19 함께 이겨냅시다’라는 감사 메세지와 응원선물을 전달하였습니다. 선물을 받은 종사자들은 '아이들 선물도 감사한데 이렇게 종사자까지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다. 힘든 시기지만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며 기뻐하셨습니다.
작은 선물이지만 아동들에게도, 선생님들에게도 함께하는 이웃이 곁에 있다는 메세지가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모금에는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지정기탁을 해 주신 후원자 박봉주님과 싼타되기 프로젝트에 함께 해주신 신자들과 기관들의 참여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천주교인천교구 코로나19 대응 특별위원회는 코로나19 장기화로 고통받는 이웃에게 다가가고 코로나19로 위축된 지역사회를 응원하고자 구성되었으며 지난 추석에 코로나19 의료진에게도 응원메세지와 양말을 전달한 바 있습니다. 2021년에도 공동선 캠페인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과 지역사회에 다가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우리의 삶은 많은 것이 달라졌고, 교회도 미사와 공동체모임 중단이라는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단계별 조치가 있을 때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영향력을 실감하게 되는데요 코로나19 상황이 상당기간 지속화될 것이고 이에 따른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인천교구는 코로나19 대응 특별위원회(위원장 이용권 신부)를 구성하였습니다.
특별위원회 구성에 앞서 노동사목위원회, 정의평화위원회, 가톨릭인천사회복지회는 지난 추석 연휴에 코로나19 인천지역 의료진에게 응원플랑과 양말을 전달하였습니다. 815 광화문 집회 이후 늘어난 코로나 확진자를 치료하고 있는 인천의료원,가천대길병원,인하대병원 노조를 찾아 의료진에게 감사의 인사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였습니다.
코로나19대응 특별위원회는 의료진 응원에 이어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위한 응원 릴레이를 이어가며, 코로나 블루로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자들에게 전화상담을 통한 심리지원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또 후원계좌를 통해 모아진 기금은 코로나로 생계, 학업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을 위해 사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위축된 지역사회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고 연대의 정신을 실현하는 특별위원회에 관심과 후원 요청드립니다.
2월 5일 평화의 시선 월례미사와 특강은 “우리곁의 난민”이라는 주제로 난민 다섯 분을 초대하여 진행하였습니다. 난민 당사자가 ‘책’이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난민과 함께하는 사람책 도서관’ 프로그램은 난민 활동을 하는 비영리 단체 ‘아시아 평화를 향한 이주(이하 MAP)’의 진행과 통역을 협조 받았습니다..
이날 평화의 시선 참여자들은 다섯명의 난민 중 1명의 이야기를 듣고 궁금한 것을 질문하며 난민에 대한 이해를 높이게 되었고 전체 마무리 시간에는 각자가 만난 난민을 소개하며 자신으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가자들은 초대된 난민들 모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 아쉬웠했지만 모둠별로 진행된 만남을 공유하며 난민들의 이야기를 새롭게 느끼고 경청하였습니다. 난민책 도서관이 좀더 많은 곳에서 열리기를 바라며 참여하신 분들의 이야기와 소감을 소개합니다.
사람책 도서관을 읽고,,,,
난민에 대해 막연한 이미지만 있었는데 사람책을 통해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직업소개소에서 “일하려면 히잡을 벗어야 해” “한국의 룰이야, 한국에서 살려면 히잡을 벗어야 해” “히잡 쓴 사람을 원하지 않아”라는 말을 듣고 그 담당자에게 ‘히잡을 벗을 수 없다.’ ‘이게 내 모습이다.’ ‘한국은 그렇지 않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멋진 야스민에게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부끄러움은 나의 몫~ 난민과 여성의 삶이 다르지 않다는 것과 난민을 집단으로 보면서 일반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으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편견이나 다른 시선이 난민들에게 불안과 두려움이 아닌 평화와 존중되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예멘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야스민의 마지막 말이 정말 뭉클하고 마음에 남는다. -황소연-
난민에 대해 토론을 해본 적은 있어도 그들의 현재 상황이나 사연이 궁금하거나 와닿은 적은 없었는데, 이번 기회로 그 부족하던 부분들을 채울 수 있었던 것 같아 좋은 경험이었다. 대부분의 우리 또래 친구들이 얕은 지식으로 난민을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이번 만남으로 내 생각을 더 굳힐 수 있게 된 것 같다. 사람들은 과장되거나 왜곡된 정보로 난민을 혐오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그들의 생활을 볼 생각도 안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사실을 알릴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실 처음엔 그냥 아 가자고 하니까 간다… 하는 생각이었는데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는 정말 소중한 기회였고 값진 경험이 됐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청소년 참가자 박예소-
사람이 책이라는 사실... 맞다. 사람은 움직이는 책이다. 2월 평화의 시선에서 마티오라는 ‘사람책’을 읽었다(=들었다.). 현재 부산에서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그는 이집트에서 부모님과 함께 기독교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서 한국으로 온 지 4년이 된 청년이다. 이집트 자국 내에서 이슬람교(?)이외의 다른 신앙을 갖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단다. 전쟁, 환경 등의 난민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종교 난민은 좀 생소했다. 종교적 이유로는 난민 허락이 어려운 모양인지 마티오는 두 번째로 난민 신청을 접수해 놓은 상태라고 한다. 과연 나라면 종교 때문에 난민이 되는 걸 선택할 수 있을까? 종교 때문에 내 나라에서 순교해야 한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난민으로 간다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울 것만 같았다. 마티오가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기 위해 고생한 것은 실로 엄청났다. 불과 4년 만에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는 학우들에게 자신이 난민이 아니라 이민온 학생처럼 생활한다고 한다. 난민이라고 하면 어쩐지 나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이민 학생처럼 밝게 지낸다고 한다. 몹시 안쓰러웠다. 아직 난민으로 인정이 되지도 않았고 한국어가 서툴어 그냥 집에만 계시는 엄마, 다른 지방의 말농장에서 일하는 아버지, 자신이 감당해야 할 미래가 매우 불확실한 것 같은 마티오의 이야기가 한국에서 해피엔딩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문점숙 마리루치아 수녀-
평화의 시선을 통해 실제 난민과 만날 기회가 생기게 됐다. 내가 만나게 된 난민은 태국에서 온 차녹난 이었다. 차논난씨께서는 태국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내가 알고 있던 태국과는 많이 다른 나라였다. 꼭 여행을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태국은 쿠데타가 국왕과 군부가 손을 잡고 지속해서 일어나는 나라였다.
그 과정에서 차녹난씨는 끊임없이 태국을 위해 자국민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며 싸워 온 인권운동가였다. 차녹난씨의 이야기를 듣다 보며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이 생각났다.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가들이 차녹난씨처럼 싸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태국은 활동가들이 활동을 전혀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화 운동가들처럼 싸우고 구속되고를 반복하고 셀수 없을 정도로 반복하다가 태국에서는 차녹난씨에게 ‘왕실 모독죄’를 구형받았다고 한다. 태국에서 ‘왕실 모독죄’가 구형이 되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는데 구속이 되기 전에 죽거나 징역살이 중 죽는다고 한다.
차녹난씨는 이를 피해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 와서도 ‘태국에서 온 여자’라는 것으로 인해 많은 차별의 시선을 받아야 한 했다. 차녹난씨는 유일한 태국 난민으로 9개월 만에 난민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9개월이라는 말을 듣고 너무 오래 걸렸다고 생각했으나 이 기간은 굉장히 짧은 시간으로 차녹난씨가 인권활동가로 유명했기 때문에 빠르게 난민 인정이 되었다고 한다. 아직 많은 난민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난민을 바라보는 차별과 혐오의 시선이 많다. 차녹난씨를 만나고 나에게 있던 난민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질 수 있었다. 단순히 내전을 피해 온 사람들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난민의 모습이 다른 많은 이유로 나라를 떠나올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게 되었다. -구지현 엘리사벳-
사람책 소개
김민혁
2003생 이란 출신의 김민혁군은 고등학교 재학중이고, 패션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사업하는 아버지를 따라 7살에 한국에 와서 자랐고, 친구들과 어울리다 교회도 다니게 되었다. 2016년 본국으로 돌아가라는 통보를 받았지만 개종을 한 민혁군과 아버지가 이란으로 돌아가면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 고심하던 중,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국민청원을 하게 되었고, 언론에 이슈화되면서 난민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하지만 민혁군의 아버지는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미성년자인 민혁군의 보호자로 체류하고 있다. 민혁군이 성인이 되면 이란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차논난
태국 출신의 난민 여성 차논난씨는 2000년 이상 왕실체제를 유지하고 황제가 정치에 간섭하고 있는 태국의 정치를 비판하는 대학생으로 주장하고 실천하는 운동가였다. 대학생으로 활동할 때는 태국의 국내 여론이 학생들을 지지하는 국민 여론을 의식해서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도 다시 풀어주는 상황이 반복되었지만 2014년 쿠테타가 일어나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이제 학생의 신분도 아니고 체포되면 군사법정에 서야 하는 상황, 거기다 황실모독죄라는 통고를 받고 2시간 만에 망명을 선택해야 했던 차논난씨는 한국에 와서 광주 민주화 활동가들과 연결되어 난민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현재 MAP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인권운동가로서 자신의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야스민
예멘 출신의 여성인 야스민은 500명의 예멘인이 한국에 오게 된 상황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예멘 인구의 2%인 후티군이 대통령을 살해하고 수도와 주요 도시를 점령하였고, 젊은이들을 착출 해 전쟁에 참여시키고 있다. 교사였던 야스민씨는 3개월간 월급이 나오지 않아 생활고를 겪었고 이후 일을 할 수도 없게 되었다. 다행히 오빠와 연락이 닿아서 먼 친적이 있는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한국에 오니 제주도밖에는 머무를 수 없었지만 다행히 인도적 체류로 허가를 받아 서울로 올 수 있었다. 한국에 머무르며 직업 소개소 등에서 히잡 착용에 대한 선입견으로 상처를 받았다. 난민이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은 예멘으로 돌아가야만 행복해 질수 있다고 생각한다
차크마 나니
차크마 나니씨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난민이다. 방글라데시는 국민 대다수는 벵골어를 쓰는 뱅골인이 98%이고 차크마 나니씨는 벵골인이 아닌 소수민족 중 하나인 줌머족이다. 1971년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한 방글라데시에서 줌머족은 인종 청소와 인종차별의 표적이 되었다. 차크마 나니씨는 1994년에 인도,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오게 되었고, 처음 머무른 도시가 인천이라고 한다. 인천에 와서 가톨릭회관에서 노동상담도 받고 인천에 좋은 기억들이 있다고 한다. 2002년에 난민 신청으로 해서 2004년에 인정되었고 귀화 신청을 해서 2014년에 이씨라는 성을 가지면서 이나니라고 불리게 되었고 현재 노동상담을 하며 생활하고 있다.방글라데시에서는 박해, 종교갈등이 심한데 한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고 경제, 문화 등 여러 가지의 이유로 한국을 선택했다고 한다.
마티오
이집트에서 온 마티오군은 아버지,어머니와 함께 2016년 한국에 오게 되었다. 이집트에서 종교의 선택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종교를 바꾸는 것은 곧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행을 택한 마티오의 가족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더 없는 노력을 해야만 했다. 가족모두는 뿔뿔히 흩어져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을 하고 마티오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한국의 학교에 다녀야만 했다. 한국말을 전혀 몰랐기에 수업시간에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던 마티오는 한국어능력평가시험을 준비했다. 첫 번째 시험에서 40점을 맞았지만 다섯 번째 도전에서 수능을 치를 수 있는 점수를 받게 되어 부산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마티오는 친구들에게도 난민이라고 말을 하지 못한다. 난민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난민임을 밝히기 어려우 상황이다. 가족은 흩어져 살고 있는 상황이지만 마티오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한번의 난민신청이 통과 되지 못했고 이제 두 번째 난민신청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음에도 빠짐없이 오신 수강생 분들이 대단 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성당을 따뜻하게 해 놓고 기다리신 원당동 사무장님께 감사하더라구요.
유범상 강사님은 퀴즈로 시작하셨습니다. ‘정치와 무관한 것이 세상에 있을까?’ 문제를 맞추고 정답을 찾는 행위에 익숙한 우리 수강생들은 예시를 뚫어져라 보았지만 알쏭달쏭했습니다. 물론 답은 ‘세상에 정치와 무관한 것은 없다.’였습니다. 현재 우리는 생각하고 말하는 호모폴리티쿠스(정치하는 인간)가 아니라 호모 이코노미스(이익, 경제활동을 하는 인간)로만 강요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중세까지는 생각과 말은 하느님만 하시고 그것을 대변하는 성직자가 제1신분이었고 근대로 넘어오면서 모든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고 정치하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치 정권 히틀러도 그렇고 우리 박정희 시대 때도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나 그 국민의 말과 생각을 규정하는 권력(강사님은 달을 가리키는 ‘달달놈’이라고 하셨습니다.)을 보았을 때 ‘과연 누가, 어떻게 정치해야하는가?’우리는 누구나 성실하고 시키는대로 일만했는데 우리가 창출한 권력이 사람을 죽이고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었으면? 그리고 시키는 대로만 하게끔 훈련받아 생각하고 말하는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묵인하는 것도, 반대하는 것도, 찬성하는 것도 그 모든 것이 저어치적 행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핵심 질문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하는데 어떤 국민이 되어야 하나?’
순응만 하고 비판이 없는 시민으로만 교육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순응은 우파, 비판은 좌파라고 색깔론이 입혀집니다. 생각하지 못하고 생각 되어집니다. 순응은 제도와 틀에 맞춰지는 것이고 비판은 돌아보고 기존의 생각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것으로 우리에게는 순응에서 벗어날 수 있고 순응의 틀이 넓은 체제에서도 그 틀을 넓힐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상상력을 가져야 합니다. 통에 순응하기만 하면 달라지지가 않습니다. 통을 넓히든 통을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정치입니다. 비판하고 상상할 수 있는 생각하고 말하는 시민 되기!
선성장 후분배, 선별적 복지로 통을 제한하는 것은 호모이코노미스를 권장하는 모습입니다. 통을 넓히고 스스로 비판하는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필요한 재정을 물으면 부자들에게 걷으면 됩니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논리는 베버리지 보고서의 가난, 질병, 불결, 무지, 무위(실업)을 개인이 해결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함께, 국민이 함께 책임지고 해결하기 위해서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고 그것으로 취약계층도 살리고 부자도 손해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어려서부터 교육으로 체화되어 학력 차별도 없고 직업의 귀천도 없습니다.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위해서는 재정의 문제만 볼 것이 아니라 그러한 시민을 교육하고 활동할 수 있어야 하는데 큰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는 ‘촛불’입니다. 작은 사건들이 있어야 하고 그 사건 이전에 더 많은 징후들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작은 공동체부터 대상화되지 말고 생각하고 말하는 학습 동아리 활동 정치 써클 활동을 하여 이야기들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들어 노인 복지관에 청소년들이 봉사오는데 어느 어르신이 더 이상 우리를 돌보지 말고 지역사회를 돌보자고 하여 함께 쓰레기를 줍고 화단을 가꾸는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어르신들이 바리스타 자격을 취득하고 대학 앞에서 ‘힘내라 청년들’ 이란 선전물을 붙이고 차를 나눠주고 소통하며 의회에 모니터단으로 활동하여 목소리를 전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수천의 징후가 되고 사건으로 모아지고 결정적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하는 시민,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질문시간에는 강사님 나이를 물어보셨는데, 이 부분에서 늙은이, 젊은이를 생각과 몸으로 함께 표현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본인은 젊은 젊은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국 정치의 이데올로기적 한계인 자유주의 일색에서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는 비판의 소중함을 한 번 더 이야기 하시고 제도만 탓해서는 안 되고 시민사회가 달라지지 않으면 마찬가지 이니 우리의 역할을 강조하셨고 성당에서도 사제와 평신도의 역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의견이 추가로 제시되었고 이 부분은 다음 ‘평신도 역할’ 강의와 수료 미사 때 추가로 이야기 하기로 하고 강의를 마쳤습니다.
사회교리가 벌써 반을 지나 네 번째 강의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강의가 2번 남았다고 하니 아쉬우면서도 후련한 마음으로 원당동 성당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네 번째 강의의 주제는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였습니다. 오준호 작가님께서는 강의를 탈출기의 ‘만나’를 예를 들어 시작하셨습니다. ‘만나’의 예로 우리 교회에서는 과연 기본소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기본소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강의 중 가장 절실하게 느껴진 것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마다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많습니다. 친구들 대부분이 사회초년생이 많습니다. 모이면 하는 이야기가 너무 힘들고 괴롭지만 3년은 버티자는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또한 새로운 것을 하고자 한다 말한다면 괜한 시도 하지 말고 하던 거나 잘하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우리는 왜 3년을 버텨야 하고 새로운 것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만두고 새로운 것을 한다면 우리는 ‘0’으로 돌아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우리는 ‘0’으로 돌아간다 해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청년, 청소년들이 살아갈 이 사회는 취업이나 미래에 대해 불안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지만 사회교리를 배우고자 수강생들이 늦은 시간에 발걸음을 재촉하며 원당동 성당에 모였습니다.
3강 강의를 맡아 주신 심현주 선생님은 타 교구에서도 사회교리 강의를 맡고 계신 전문강사님이셨습니다. 짧은 시간이라 노동과 소유 두가지 주제를 다루기에 쉽지 않다고 말씀하셨지만 노동과 소유에 대한 사회역사적 의미와 교회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노동 하면 힘겨운 일, 먹고 살기 위해서 힘들지만 해야하는 일, 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멈출수 없는 일 이정도로 생각하게 되는데요, 구약에서는 하느님의 벌이었던 노동이 산업혁명시대에 노동자의 권리로 가톨릭 교회가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 인상깊었습니다.
지난 2강에 이어 교회가 사회의 변화 과정속에서 함께 변화하며 복음을 선포하려고한 모습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강사님께서는 노동자의 권리를 사유재산권, 노동과정참여권, 단결권, 여가권,파업권 이렇게 설명해 주셨는데요 저는 특히 노동자의 권리인 단결권, 파업권 역시 교회에서 노동자의 권리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이번 강의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제4차 산업혁명이 시대가 오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게 된다고 하는데 노동을 지금과 같이 하지 않아도 생존이 보장된다면 노동은 어떤의미를 같게 될 지를 생각하며 사회적 노동에 대해 제안하신 부분도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강의 후 수강생들과 나눔시간에 강의 내용에서 기억에 남는 것을 이야기 하며 강의 내용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에 대한 개념이 아직은 나에게 어렵다. 아직은 내 것을 포기하기 보다는 더 많이 가지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노동자의 권리중 참여권을 들었는데 정말 참여하는 노동자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대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안타깝다.”등등의 의견 나눔이 있었습니다.
한주 한주 강의 내용이 쌓여 가면서 가톨릭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조금씩 알게되는 것 같습니다. 강의해주신 심현주 강사님과 함께 하시는 수강생들께 감사드립니다.
‘강의를 빠질까?’ ‘그래도 가야지’라는 고민과 갈등을 거듭하다가 원당동 성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밀려오는 피로감에 처음에는 강의에 잘 집중하지 못하였으나 사회교리의 근원과 역대 교황들의 사회회칙과 사목서한, 권고라는 새로운 내용에 조금씩 조금씩 강의에 집중할 수가 있었다.
이번 강의를 통해서 큰 역사적 사건 때마다 교회는 그 자리에 함께하였고, 또한 그때마다 교황님들은 사회회칙을 선포하며 개입하고 실천하고 행동하며 사회와 함께하며 변해 왔다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또한 “너희는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이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고민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즉, 교회 안에서 기도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으로 나가 다시 말해 사회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정치, 사회, 문화, 경제등 전반적인 것, 생각하고, 고민하고, 함께하고,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이며 그것이 주님의 가르침이며 교회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이 사회 안에 그리스도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자리에 머무르고 계실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역사적으로 그래왔던 것처럼 항상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함을 상기시키는 시간이었다.